[시혜자인가 수혜자인가], 2003-1학기, 0310331 이훈재
사학입문논평
지도교수 : 이상의

  "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다."부터가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말이다. 한마디로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잘못된 편견과 차별은 처음부터가 잘못된 셈이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불리는 그들, 불특정 다수에 관한 나의 시각 역시 유명기 교수의 글에서 지적한 잘못된 언론의 보도와 일반적인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단에 표기된 "외국인 [이주] 노동자" 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들이 단지 타국에 와 있을 뿐이지, 생각하고 생활하는 데 있어 나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인격 주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되새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본국에서의 그들은 하층민이 아니며, 중간 이상의 재산을 갖고 고등교육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비교적 새롭다. 아마도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동정과 연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상적 차별-경제주의, 인종주의, 민족/국가주의-을 무릅쓰고 불법이든 합법이든 하루하루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을, 이제는 존경하는 마음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별다른 꿈도, 생에 대한 성찰도 없이 마냥 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행복한 것인가?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이 바뀌면 우리는 시혜자라기 보다는 수혜자이다.

  특히 마리오 토레스의 수기에 이르기 까지 일련의 글 전체에 공통적으로 드러나 있는 한국인의 '이중성'내지 '모호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외국인도 사람인데 저런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이 있나.”는 욕설과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했던 토레스의 사장이 별다른 이유 없이 토레스에게 적은 임금을 지급해온 사실은 어떻게 어디서 교차되는가? 비단 외국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스포츠 경기에서는 선수가 한국인의 몇 대 손인지 까지 따져들어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이 어떤 문제가 제 이익과 관련되는 경우 '민족'은 어디가고 어찌 그리 입 싹 닦고 등 잘 돌리는지 의문이다. 굳이 원인을 꼽자면 이는 우리의 교육에서 각박한 현실과 바보 같은 교과서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과 6.25등을 겪으면서 이주 노동, 이주 농민을 직접 겪었던 우리 사회의 경험과 역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인권 문제, 처우 문제와 별다른 관련성이 없을뿐더러 문제의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원래 집 떠나면 고생”이라며 불쌍하게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더 친절을 베푸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임금체불, 감금, 성폭력 등의 문제와 같이 눈에 드러나는 기본권 관련 문제보다 더 큰걱정은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외국인을 자꾸 특별하게만 느끼는 우리의 구시대적 발상과 시각이다. 눈에 띄는 문제들이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제도적인 대책을 세우면 많은 부분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은 외국인이 아닌 양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하루 아침에 바뀔 것 같지 않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이 외모가 다소 이국적이라는 이유로 왜 우리는 그 사람 뒤에서 “쟤, 혹시 튀기 아냐?” 하고 쑥덕거려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관점에서 이금연 관장의 “이주 여성들에게도 국내의 여성 관련 법률들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을 위한 특별한 법과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을 국내법, 우리 국민과 동일한 법의 테두리로 끌어오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새로운 법은 불법이라는 음지에 묻혀있는 그들을 양지로 끌어내는 절차와 관련된 등록, 신분보장과 관련된 법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끝으로 이러한 문젯거리의 해결 과정과 설동훈 교수가 지적한 이주 노동자의 우리 산업에 대한 기여도를 고려하면 누가 수혜자인지 시혜자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give and take, win-win 의 관계는 아닌가?
2003/06/06 22:39 2003/06/0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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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의 생활력 보다도 강한 편견과 차별] 2003-05-07, 0310331 이훈재
사학입문논평
지도교수 : 이상의

  2000년 11월 [뉴스위크]지에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국적에 따라 모여사는 동네가 다르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육체 노동자로 온 나라의 사람들이 사는 곳과 정신 노동자로 온 나라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 너무도 완벽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씁쓸함을 남겼다.
 
  1995년 발표된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 나와있는 서울시 동별 외국인 인구를 주민 만명당 비율로 계산했을 때, 가장 높은 순서대로 적어보면 연희 3동 685.87명, 이촌1동 537.04, 회현동 395.64, 이태원1동 386.07, 한남2동 349.67인데, 가산동은 15위로 130.17로 나타난다. 이 통계에는 국적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뉴스위크]지 기사를 토대로 외국인들의 국적을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동들은 연희동(화교), 구로·대림동(조선족), 동부 이촌동(일본인), 반포·방배동(프랑스), 한남·이태원(독일) 등이다
 
  중국인들이 구한말부터 대대로 자리잡고 살아온 소공동 지역은 시청과 바로 마주하고 있어 도심부 재개발 사업의 1호가 되었다. 처음에 화교들은 자기들 상점을 철거하고 난 자리에 번듯한 고층의 화교회관을 지어 분양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을 믿고 임시로 이 곳을 떠났었다. 1971년부터 소공동 일대의 화교지구가 철거되기 시작했지만, 결국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대기업 한화에게 모든 소유권을 팔아넘기고 이 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플라자 호텔이 세워졌다. 중국인들이 도심의 노른자위 땅을 잃고 허름한 회현동이나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한민국 정권, 특히 박정희 정권의 지속적인 화교에 대한 차별정책 때문이었다. 1961년의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 화교들이 집안에 모아둔 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던 1963년의 화폐개혁, 1973년 중국 음식점의 쌀밥 판매 금지령을 등을 통해 이 땅은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 화교자본이 성공하지 못한 나라, 화교 수가 계속 줄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화교들을 시청앞 소공동에서 회현동으로 밀어낸 이런식의 화교차별정책이 민족주의 정신의 발로였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 대사관은 경복궁 바로 앞, 정부 청사를 마주보면서 광화문 네거리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중국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었던 시대에는 화교를 찬밥대우할 수 있었지만,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이 시대에는 한국화교경제인협회도 만들어지고(1999년), 중국 눈치보느라 달라이 라마의 입국도 허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의 서울사람들은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명제를 구한말의 서울사람과 얼마만큼의 차이를 보이며 수용할 수 있을까?


--글을 읽고 난 후 감상을 적는 논평이 아닌 토론 노트라고 하니 이번에는 실제 구체적 지명과 함께 실감나게 작성된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글을 요약해보았다.
[회현동, 화교(華僑)와 적산가옥 - 서울대 지리교육과  강사 심승희]
원문 :
http://www.issuetoday.com/11_press/10_mpage_view.asp?pk_n4Bulletin=20097&w_mode=1
2003/05/07 22:43 2003/05/0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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